[주일설교, 2020.08.23, 김진영 담임목사] 이스라엘의 패배와 하나님의 승리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0년 8월 23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이스라엘의 패배와 하나님의 승리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4장 5-18절 |
| 함께 읽은 말씀 | 역대하 7:12-14 / 설교 중 인용: 사무엘상 3:11 |
| 영상 | https://youtu.be/GmWBynY_iv0 (설교 약 33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비너스"→비느하스, "은 학계·은 약계·어느 학기"→언약궤, "이카 곧·이카 보트"→이가봇, "회계"→회개, "타령"→탈영)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영상의 자막은 설교 첫머리("이스라엘의 패전을 전하는 베냐민 사람의…")부터 시작합니다. 설교 끝부분에 코로나19 상황과 예배에 관해 말씀하신 한 대목은 자막이 심하게 깨져 있어 뜻이 통하는 범위만 옮겼습니다(8장 참조).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장면 | 패전 소식을 안고 아벡에서 실로까지 달려온 베냐민 사람. 옷은 찢기고 머리에는 먼지를 뒤집어썼다. |
| ② 완벽한 패배 | 3만 명이 죽고, 군사들은 각자 집으로 도망가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언약궤를 빼앗겼다. 실로의 성막도 무너진다. |
| ③ 패배의 다른 면 |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 모욕을 당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패배하신 것은 아니다. 이 패배는 하나님이 하신 예언의 성취다. |
| ④ 성취 하나 |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삼상 3:11)는 말씀 그대로 되었다. |
| ⑤ 성취 둘 |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라는 말씀 그대로 되었다. 그들의 죽음이 이 전쟁의 목적이다. |
| ⑥ 죄 하나 | 지도자들의 죄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 |
| ⑦ 죄 둘 | 백성의 죄 — 언약궤만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미신, 헛된 확신. |
| ⑧ 하나님의 작정 | 영광이 이미 떠났기 때문에 패한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을 돌이키시려고 스스로 모욕당하기로 작정하셨다. |
| ⑨ 말씀 | 역대하 7:12-14 —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
| ⑩ 한국 교회 | 70~80년대의 부흥과 그 뒤의 염려. 우리는 코로나에 지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일에 지고 있다. |
| ⑪ 미스바 | 사무엘의 20년 말씀 사역 뒤에 온 이스라엘이 회개했다. 교회가 잘되어야 나라가 잘된다. |
| ⑫ 필요한 교인 | 비판만 하는 똑똑한 교인이 아니라, 주님이 서 계신 돌 맞는 자리에 같이 서는 교인. |
| ⑬ 결론 | "내가, 우리 교회가, 한국 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를 구하며 기도하라. |
3. 결론 — "하나님, 제가 회개해야 할 죄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걸기 원하는 교회를 향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을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싸워야 한다.
- 하나님께서 20년이 지난 뒤에 미스바의 은혜를 주실지, 1년이 지난 뒤에 은혜를 주실지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 이렇게 구하는 때를 요구하신다.
- "하나님, 제가 회개해야 할 죄가 무엇입니까? 목사로서, 장로로서, 직분자로서, 교인으로서 제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 우리 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 한국 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기도와 회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는 과정을 지나도록 주님의 교회를 이 자리로 몰고 가시고 이 길로 인도하신다.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면서, 역대하의 말씀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회개해야 할 죄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구하자.
- 이가봇, 곧 교회를 떠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다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통해 이 땅을 고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교인으로, 그런 교회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이 설교에서는 번호를 붙인 기도 제목을 따로 주지 않으셨다. 결론에서 던지신 질문(나와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을 품고 설교 직후 짧게 기도하신 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고 회중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서 목사님이 마무리 기도를 하셨다.
설교 직후의 기도
-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믿는다.
- 하나님께서 아벡에서 하셨던 그 일들을 통해, 지금 이 땅에서 주님의 교회와 우리 교회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기를.
-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교회로, 이 땅을 고치고 이 사회를 바른 길과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교회와 교인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마무리 기도의 요지
-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생명을 다 내어놓으시고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을 기억한다.
- 교회가, 내가,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시려고 세상의 모욕과 수치를 받는 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우리를 참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시려고 놀랍고 뜻밖의 일을 행하신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한다.
-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눈으로 지금 나의 모습, 우리 교회의 모습,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시기를.
-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의 영광과 교회의 수치를 함께하시듯이, 우리의 남은 삶도 온 마음과 온 힘과 생명을 다해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살아가는 은혜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 하나님의 손과 은혜에 붙들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 참 믿음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제자의 길을 걸어가게 해 주시기를.
- 우리의 연약함과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시고, 주님 보시기에 다시 거룩한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참 교회와 참 신자로 회복시켜 주시고 부흥시켜 주시기를. 이번 한 주가 그런 한 주가 되도록 성령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기를.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4:5-18)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4:5 |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오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쳐 땅이 울렸다. |
| 4:6-8 | 블레셋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것을 알았다. 그들은 두려워하며 "신이 진영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화로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겠느냐. 광야에서 여러 재앙으로 애굽 사람을 친 신들이다"라고 말했다. |
| 4:9 | 그러면서도 서로 독려했다.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고 대장부가 되라. 히브리 사람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너희가 그들의 종이 되지 않도록 대장부같이 싸우라." |
| 4:10 | 블레셋 사람들이 치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했고, 살륙이 매우 커서 이스라엘 보병 3만 명이 쓰러졌다. |
| 4:11 |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다. |
| 4:12 | 그날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 나와,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덮어쓴 채 실로에 이르렀다. |
| 4:13 | 그때 엘리는 길 옆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궤 때문에 마음이 떨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와 소식을 알리자 온 성읍이 부르짖었다. |
| 4:14-15 | 엘리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 떠드는 소리가 어찌 된 일이냐" 하니 그 사람이 급히 와서 엘리에게 말했다. 엘리는 98세였고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다. |
| 4:16-17 | 그 사람이 "저는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온 사람입니다" 하자 엘리가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앞에서 도망했고, 백성 가운데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했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고. |
| 4:18 |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나이가 많고 몸이 비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였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패전 소식을 안고 달려온 베냐민 사람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패전을 전하는 베냐민 사람의 처참한 모습이 나온다.
- 전쟁이 있었던 아벡에서 하나님의 성막이 있던 실로까지는 35킬로미터 정도 된다. 오르막 경사길이다. 그 길을 달려서 이 베냐민 사람이 왔다.
- 사족이지만, 유대인 랍비들은 이 베냐민 사람을 사울 왕으로 해석한다. 목사님은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 그는 전쟁터에서 패하고 그 처참한 소식을 전하려고 35킬로미터 비탈길을 달려 올라왔다. 옷은 찢어져 있고, 머리는 먼지를 뒤집어썼고, 얼굴에는 탄식과 눈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 그는 성문에 앉아 있는 엘리를 지나쳐 성안으로 먼저 달려 들어갔다. 문 곁의 엘리를 살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성에 들어가서 패전의 비참한 소식을 전했다.
6-2. 그냥 패한 것이 아니다 — 지금까지 없었던 완벽한 패배
그가 전한 소식은 이것이다. "우리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 그냥 패한 것이 아니다. 3만 명에 이르는 많은 형제들이 죽임을 당했다.
- 그냥 패전한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전쟁을 하면 패할 수도 있고, 패하면 패잔병들이 모여서 패전의 슬픔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패전의 충격과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 패한 사람들이 전쟁터에 더 남아 있지 못하고 탈영병들처럼 다 각자 집으로 도망갔다. 철저한 패배이고, 그때까지 없었던 완벽한 패배를 당했다는 말씀이다.
- 언약궤를 메고 갔던 하나님의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다.
이 소식 앞에서 이스라엘은 수치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원수의 발에 짓밟혔다는 비참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패배다.
패배의 여파 — 실로의 성막
- 이 패배의 여파로 블레셋은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을 파괴하게 되고, 성막은 더 이상 실로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 훗날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의지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실로에 있던 나의 성막에 어떻게 행했는지, 어떻게 진노했는지를 돌아보라."
이 패배는 단순한 한 번의 패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언약궤,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가 이방 사람들에게 완전히 짓밟힌 패배, 하나님의 영광이 온데간데없어진 패배,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떠났다" 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철저한 패배였다.
6-3. 패배의 다른 면 — 이스라엘은 패했지만 하나님은 패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서를 기록한 선지자는 두 가지를 함께 말한다.
- 이스라엘의 완벽한 패배로 하나님께서 많은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되셨다.
- 동시에 이 처참한 패배는 하나님의 진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의 수치와 패배에 함께하신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 구약의 교회가 패배하고 수치를 당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패배하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기 교회와 함께 모욕을 당하신다. 그러나 그 모욕과 수치를 통해 사랑하는 교회에 주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패배이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예언의 말씀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목사님은 그 가운데 두 가지를 집중해서 살피셨다.
6-4. 성취된 말씀 ① —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 집안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삼상 3:11)
엘리 집안의 죄를 심판하시려고 하나님이 한 가지 일을 행하실 것인데, 그 일을 듣는 사람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소식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하며 귀가 울릴 수밖에 없는 일을 행하겠다는 말씀이다.
패전 소식을 안고 달려온 베냐민 사람이 성에 와서 부르짖었을 때 백성이 들은 소식은 점점 더 충격적이었다.
| 들은 소식 | 왜 충격인가 |
|---|---|
|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 원수에게 패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인데,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패했다. 백성들이 놀랐다. |
| "언약궤를 가지고 갔는데도 패했습니다." | 더 놀랄 소식이다.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갔는데 패전한 일은 이스라엘 역사, 구약 교회 역사에 없었다. |
| "언약궤까지 이방인의 손에 빼앗겼습니다." | 더 충격적인 소식이다. 이스라엘 역사 이래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두 귀가 울릴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
이스라엘의 패전, 많은 형제와 아버지들의 죽음, 언약궤가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두 귀가 울렸다. 하나님께서는 두 귀가 울릴 이 비참한 소식을 미리 확실하게 예언하셨다.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다. 그 일을 들을 때에 너희의 두 귀가 울릴 것이다. 유사 이래로 이런 비참한 소식이 있다니, 할 놀라운 일을 내가 행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예언하신 그대로 행하고 계신다.
6-5. 성취된 말씀 ② —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을 말씀하셨다.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앞에서 하나님이 이루셨던 일로 이스라엘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은 요단강이 갈라진 일이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요단강이 갈라졌다.
- 그런데 이번에는 언약궤를 메고 나간 제사장들이 칼에 죽임을 당하여 한 날에 죽었다. 메고 간 언약궤는 완전히 빼앗겼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다.
-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언약궤를 빼앗기신 것이 아니다.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억울하게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은 이 전쟁의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허락하셨을 때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은 이 전쟁을 통해 홉니와 비느하스, 곧 엘리 집안의 죄를 심판하시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패했다. 그러나 그 패배를 통해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들을 성취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전쟁을 볼 때 패배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의 영광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수치스러운 패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이 아벡 전투의 패배를 통해 이스라엘의 두 가지 죄를 지적하시고 그 죄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
6-6. 하나님이 지적하신 죄 ① — 경건의 모양만 있는 지도자들
첫째는 홉니와 비느하스, 엘리 집안의 죄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참 경건의 능력이 없이,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지 않는 제사장과 지도자들의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 그들은 제사장의 옷을 입고 있다.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다.
- 그러나 지도자들조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지 않는다.
-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순종하지 않는다.
- 그들의 삶은 거룩하지 않고 부도덕하며 타락해 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경건의 능력과 실제가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노릇 하는 것을 더 이상 차마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이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거룩한 흉내만 내며 살아가는 교회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신다.
6-7. 하나님이 지적하신 죄 ② — 백성의 미신과 헛된 확신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심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미신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수준은 블레셋 군사들의 신앙 수준과 똑같다.
-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왔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언약궤가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같이 들어왔다고 믿었다.
-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이 생각했다. "언약궤가 들어왔으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 그들의 믿음은 헛된 확신이고 헛된 믿음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어기고 무시하면서 살아간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더라도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라는 헛된 확신과 미신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한 헛된 확신과 미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미신을 견고하게 해 주지 않으신다. 그 헛된 믿음과 미신에서 벗어나도록,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확신에서 떠나도록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더라도, 하나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참 믿음의 자리, 참 거룩한 자리로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6-8. 하나님은 스스로 모욕을 당하기로 작정하셨다
-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했다. 제사장들도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전리품으로 빼앗겼다.
-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 모욕을 당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전리품이 되어 다곤 신전에 트로피처럼 전시되는 모욕을 당하실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욕을 당하기로 작정하셨다. 그 모욕을 통해, 헛된 미신과 확신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징계하시고 돌이키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거룩한 하나님의 신자가 되게 하시려고 스스로 이 모욕과 수치를 받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가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떠났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한 것이다.
- 엘리의 며느리가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떠났다"고 했지만, 언약궤를 빼앗기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을 떠나 있었다.
- 언약궤를 가지고 있던 그 순간에도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어둡게 하고 땅에 짓밟고 있었다.
- 블레셋 때문에 패한 것이 아니다. 믿음의 자리에서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빼앗기는 수치를 스스로 당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아이러니
참 아이러니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언약궤를 빼앗겨 원수의 수중에 넘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이미 땅에 떨어진 나의 영광, 이미 너희가 짓밟고 있는 나의 거룩을, 내가 언약궤를 빼앗김으로 회복시킬 것이다. 이 패배와 이 수치를 통해, 나의 백성이 다시는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살아가지 않도록, 다시는 하나님에 대해 미신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도록 내가 반드시 돌이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떨어진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시키시려고 수치의 자리, 모욕의 자리에 들어가기로 작정하신다.
6-9. 함께 읽은 말씀 — 역대하 7:12-14
목사님은 화면을 보며 역대하 7장 12-14절을 회중과 함께 읽게 하셨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뒤 이 성전에 관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다.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2-14)
함께 읽은 뒤 목사님이 14절을 한 번 더 읽으셨다.
6-10. 한국 교회 — 부흥의 은혜와 그 뒤의 염려
부흥
- 한국 교회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안에서 부흥했다.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주셨다.
- 세계복음주의협회가 모였을 때 한국 교회 대표가 가서 보고한 내용이 있다. "한국 교회는 주일마다 수십 개의 개척 교회가 설립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꽂는 곳마다 교인들이 몰려 들어와 주님의 교회가 번성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교회 대표들이 그 놀라운 소식에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염려
- 1980년대부터 강단에서는 교회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값싼 복음에 대한 염려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지만, 제자의 삶,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다.
- 80년대, 90년대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의 은혜를 누리면서 거룩한 교회로 서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 목사님은 80년대 이후 50년이 지났다고 하시며, 교회를 염려하는 모든 사람이 지난 50년의 한국 교회 부흥을 볼 때 감사하는 면과 염려하는 면이 있다고 하셨다. 한국 교회는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동시에 한국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염려가 항상 있었다. 교인들이 한국 교회 초창기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기 위해 손해 보는 일을 감수하는가 하는 염려다.
6-11. 우리가 지고 있는 싸움 — 코로나가 아니라 순종
목사님은 "1980년 이후 50년이 지난 2020년도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시며, 좋은 점도 있지만 염려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으셨다.
교회와 학원의 싸움
- 교회와 학원의 싸움에서 교회는 번번이 패하고 있다. 이기고 있는 교회도 있지만, 주일 성수와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 사이에서 주일 성수는 점점 힘을 잃고 있다.
- 목회자를 비롯하여 중직자들과 교회 직분자들의 자녀들이 주일에 학원에 가야 할 것인가, 온종일 주일 성수를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밀리고 있고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믿음과 직장의 싸움
- 좋은 직장에서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과, 믿음으로 살기 위해 직장과 사회에서 손해를 보는 것 사이의 싸움에서 우리가 항상 이기고 있다고 말하기는 염려스럽다.
-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장에서의 승진과 좀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위해 믿음으로 사는 일을 등한히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무엇에 지고 있는가
우리는 코로나에 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정부에 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세상에 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지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일에서 우리 스스로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경건의 모양 속에 경건의 참 능력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코로나를 통해, 온갖 모욕과 이야기를 듣고 있는 교회를 향해 이 시기에 돌아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
- 우리는 우리로 말미암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참으로 염려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려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이 사회에 드러나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
- 교회와 교인이 하나님을 정말로 존중히 여기고, 개인의 삶과 교회의 삶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 하나님께서는 엘리 시대에 교회를 세상에서 수치당하게 하셨다. 두 귀가 울릴 수밖에 없는 패배를 주셨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패배였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이렇게 처참하게 패하느냐. 전쟁터에서 집으로 도망갈 정도로 패하느냐. 언약궤를 들고 갔는데 이렇게 패할 수가 있느냐. 언약궤까지 전리품으로 빼앗겼단 말이냐."
- 하나님께서는 그 수치를 본인이 직접 당하기로 작정하신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원수들에게 모욕받기로 작정하신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이 헛된 미신에서, 헛된 확신에서, 모양만 있는 경건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6-12. 미스바의 회개 — 20년의 말씀 사역 뒤에
엘리 시대에 이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난 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미스바의 회개다.
- 사무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미신과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던 사사 시대였다.
- 300년 지속된 사사 시대에 유일하게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때가 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젖을 달라고 하듯이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와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고 구한 때다.
-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전심으로 회개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회개 운동, 미스바의 회개 운동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다.
그때가 언제인가
- 사무엘이 사사가 된 뒤,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사역하고 20년의 세월이 지난 때다.
- 20년 동안 사무엘은 온 지파, 온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 경건의 모양을 버리고 경건의 참모습을 갖추라. 하나님에 대한 참 믿음과 지식 안에서 거룩한 교회로 회복하라." 20년의 말씀 사역을 통해 회개의 복음을 전파했다.
- 20년이 지난 뒤,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에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죄를 자복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고, 스스로 낮추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았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무후무한 미스바의 회개를 통해 주님의 교회를 회복시켜 주셨다.
6-13. 교회가 잘되어야 나라가 잘된다
대한민국이 잘되면 교회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잘되어야 대한민국이 잘된다.
- 교회가 잘못되면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축복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신다.
- 내가,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며 내 안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 경건의 참모습을 갖추고,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고치시고 이 사회를 고치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6-14. 비판만 하는 교인 — 사경회 강사 목사님의 이야기
우리는 교회의 여러 모습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을 볼 때 참 못난 교인이 있다. 욕만 하는 교인, 비판만 하는 교인이다.
목사님은 한 사경회 때 강사 목사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전하셨다.
- 그 강사 목사님의 교회에 한 부부가 찾아왔다. 그 부부는 소위 말하는 개혁교회, 성경적인 교회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교회를 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왔다.
- 강사 목사님은 그 부부가 1년 동안 자기 교회에 출석하도록 했다. 부부는 1년 내내 예배만 출석했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했지만 목사님은 "저분들은 상처가 많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 1년이 지난 뒤 목사님이 그 부부에게 말했다. "그렇게 성경적인 교회, 소위 개혁교회를 하기 원하시면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셔야 합니다. 지체로 들어오셔서 예배만 참석하실 것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에 들어오시고 성경 공부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권면했지만 듣지 않았다.
- 6개월이 지난 뒤 한 번 더 권면했다. "그렇게 교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있으면, 정말로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로 함께 짐을 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어렵고 약한 부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셔야 합니다."
- 결국 그 부부는 그 교회를 떠났다.
교회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똑똑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여러 종류의 교인들을 비판하고 신랄하게 요구하는 교인이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랑하는 교인이 있다. "나는 저 정도로 무식하지 않다. 나는 저 정도로 광적이지 않다. 나는 저 정도로 열심이 없지 않다." 자기의 열심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회의 연약함과 아픔에 대해서는 돌을 던지는 교인들이 있다.
6-15. 지금 필요한 교인 — 주님이 서 계신 돌 맞는 자리에 같이 서는 사람
-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을 자기가 다 짊어지신다. 교회의 연약함과 부끄러움과 모든 것을 다 안으시고, 그 수치와 모욕을 다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신다.
- 지금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 교회의 연약함과 아픔을 내 수치로 여기는 교인이 필요하다.
- 비판만 하는 교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욕먹는 자리에 같이 서서 돌을 맞는 교인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돌 맞는 자리에 서 계신다. 거기에 같이 서는 교인이 필요하다.
- "나는 저렇지 않아요. 나는 최소한 그 수준이 아니에요" 하는 똑똑한 교인이 아니라, 주님께서 서 계신 자리에 함께 서서 주님께서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가신 믿음의 길을 걷는 교인이 필요하다.
목사님은 "서울중앙교회에 계시는 여러분, 정말로 그런 교인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라고 당부하셨다.
6-16. 하나님이 욕먹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 코로나를 통해 보여 주시는 것
목사님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하셨다. "하나님께서 욕을 먹기로 작정하신 거예요."
- 블레셋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서 손가락 하나로 다 이기실 수 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고치시려고, 미신 가운데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 모욕과 수치를 당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 코로나19를 허락하시고 이런 모든 상황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이 보시는 주님의 교회, 우리 교회, 한국 교회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수준에 있는지,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어떻게 되어야 할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다 보여 주시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 나도 모르는 악한 길에 있을 때 거기를 떠나서,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 "나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 낮추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20년 말씀 사역과 회개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다.
- 목사님은 물으셨다. "80년대 이후로 사오십 년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 한국 교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아벡 전투의 앞뒤 흐름 (사사 시대 말기, 주전 약 11세기)
| 순서 | 사건 | 성경 |
|---|---|---|
| 엘리 집안의 죄 |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물을 함부로 빼앗고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다. 엘리는 꾸짖었으나 막지 못했다. | 삼상 2:12-17, 22-25 |
| 첫 번째 예언 |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집안의 심판을 예고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것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설교의 '성취된 말씀 ②'가 이 구절이다. | 삼상 2:27-36 (34절) |
| 두 번째 예언 | 어린 사무엘을 부르셔서 엘리 집안의 심판을 다시 말씀하셨다.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 삼상 3:11-14 |
| 1차 전투 |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곁에, 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이 패하여 약 4천 명이 죽었다. | 삼상 4:1-2 |
| 언약궤를 가져옴 | 장로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다가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 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궤와 함께 왔다. | 삼상 4:3-4 |
| 2차 전투(본문) | 3만 명이 죽고, 궤를 빼앗기고, 두 제사장이 죽고, 엘리가 죽었다. | 삼상 4:5-18 |
| 이가봇 |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하다 죽으면서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지었다. | 삼상 4:19-22 |
| 블레셋 땅의 궤 |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 두었으나 다곤 신상이 궤 앞에 엎드러지고, 궤가 가는 성읍마다 재앙이 임했다. 일곱 달 만에 돌려보냈다. | 삼상 5장, 6:1 |
| 기럇여아림 | 궤가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머물렀고,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모했다. | 삼상 6:13-7:2 |
| 미스바의 회개 | 사무엘의 말을 따라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다. 블레셋이 쳐들어왔으나 하나님이 큰 우레로 물리치셨고, 사무엘이 돌을 세워 에벤에셀("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이라 불렀다. | 삼상 7:3-12 |
- 하나님이 블레셋에게 "잠시 동안" 모욕을 당하신다는 설교의 말씀은 사무엘상 5장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패했지만, 하나님은 군대 하나 없이 다곤과 블레셋 다섯 성읍을 치시고 궤를 돌아오게 하셨다. 설교 제목 "하나님의 승리"와 맞닿는 대목이다.
- 설교에서 말씀하신 "20년"은 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문 20년(삼상 7:2)과 연결된다.
실로의 멸망
- 사무엘상은 실로가 파괴되는 장면을 직접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편 78:60-64는 하나님이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능력의 궤를 포로에 넘기시며 제사장들이 칼에 엎드러진 일을 함께 노래한다.
- 설교에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으로 인용하신 것은 예레미야 7:12-14이다(예레미야 26:6, 9에도 같은 경고가 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만 의지하며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고 하셨다. 언약궤를 의지한 엘리 시대와 성전 건물을 의지한 예레미야 시대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다.
- 실로 유적지 발굴에서 이 무렵의 파괴 흔적이 확인되어, 아벡 전투 뒤 블레셋이 실로를 파괴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 이후 성막과 제사장들은 놉(삼상 21:1), 기브온(대하 1:3) 등에 나타난다.
요단강이 갈라진 일
여호수아 3장.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넘치던 요단강 물이 멈추어 온 백성이 마른 땅으로 건넜다. 여리고 성을 돌 때에도 언약궤가 앞섰다(수 6장). 이스라엘이 "궤를 가져오자"고 한 배경에는 이런 기억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한 것이고, 아벡에서는 하나님께 묻지도 회개하지도 않고 궤를 부적처럼 가져온 것이다.
사사 시대의 길이
설교에서 "300년 지속되던 사사 시대"라고 하셨다. 사사 입다가 "이스라엘이 이 땅에 거주한 지 300년"(삿 11:26)이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사사 시대 전체의 길이는 출애굽 연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약 300~350년으로 보는 견해와 그보다 짧게 보는 견해로 나뉜다.
2020년 8월의 상황
이 설교는 2020년 8월 23일에 전해졌다. 그해 8월 중순 수도권에서 코로나19가 다시 크게 번졌고, 일부 교회와 관련된 집단 감염이 알려지면서 교회 전체가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8월 19일부터 수도권 교회는 비대면 예배만 허용되었다. 설교에서 "온갖 모욕과 이야기를 듣고 있는 교회", "우리는 코로나에 지고 있지 않다"고 하신 배경이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아벡 | 블레셋 군이 진을 친 곳(삼상 4:1). 지중해 연안 평야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가는 길목이며 야르곤강 발원지 부근이다. 신약 시대의 안디바드리(행 23:31)와 같은 곳으로 본다. |
| 에벤에셀 | 이스라엘 군이 진을 친 곳(삼상 4:1). 아벡에서 가까운 산지 쪽 자락으로 본다. 이름의 뜻은 "도움의 돌". 미스바 승리 뒤 사무엘이 세운 돌의 이름도 에벤에셀이다(삼상 7:12). |
| 실로 | 에브라임 산지의 성읍. 벧엘 북쪽에 있다(삿 21:19). 여호수아 때 회막을 세운 뒤(수 18:1) 엘리 때까지 성막과 언약궤가 있던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지였다. |
| 아벡에서 실로까지 | 평야에서 산지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다. 설교에서는 35킬로미터 정도라고 하셨다. 직선거리로는 30킬로미터 남짓이며 실제 길은 그보다 길다. 본문은 그 사람이 "당일에" 도착했다고 기록한다(4:12). |
| 블레셋 | 지중해 연안 평야 남부에 자리 잡은 민족.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다섯 성읍이 연합했다. 철제 무기를 가진 강적이었다(삼상 13:19-22). |
| 아스돗 | 블레셋 다섯 성읍 중 하나. 다곤 신전이 있어 빼앗은 언약궤를 처음 가져다 둔 곳(삼상 5:1-2). |
| 미스바 | 베냐민 땅의 성읍. 예루살렘 북쪽에 있었으며 정확한 위치는 견해가 갈린다. 이름의 뜻은 "망대". 이스라엘이 모여 회개한 곳이고(삼상 7장), 훗날 사울이 왕으로 뽑힌 곳이다(삼상 10:17). |
|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 단은 이스라엘 땅의 북쪽 끝, 브엘세바는 남쪽 끝 성읍이다. "온 나라 전체"를 뜻하는 관용 표현이다(삼상 3:20). |
| 요단강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건넌 강. 여리고 맞은편에서 건넜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엘리 | 실로의 제사장이자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4:18). 어린 사무엘을 길렀다. 아들들의 죄를 알고도 금하지 않아(삼상 3:13) 집안에 심판이 선고되었다. 98세에 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넘어져 죽었다. 본문은 그가 아들들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쓰러졌다고 기록한다. |
| 홉니와 비느하스 |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 성경은 그들을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고 평가한다. 이 비느하스는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와 다른 사람이다. |
| 비느하스의 아내(엘리의 며느리) | 궤를 빼앗기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갑자기 해산하고 죽어 가면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말했다(삼상 4:19-22). 설교에서 인용된 "이가봇"의 탄식이다. |
| 베냐민 사람 | 패전 소식을 실로에 전한 사람. 성경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후대 유대 랍비 전승 가운데에는 그를 훗날의 사울 왕으로 보는 해석이 있으나, 성경에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
| 사무엘 | 한나의 아들. 실로에서 엘리 밑에서 자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그를 여호와의 선지자로 알았다(삼상 3:20). 마지막 사사이며 제사장, 선지자의 일을 함께 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해마다 돌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삼상 7:15-17). |
| 솔로몬 |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왕. 성전 봉헌 기도(대하 6장) 뒤에 하나님이 밤에 나타나 주신 응답이 역대하 7:12-22이다. |
| 예레미야 | 유다 말기의 선지자(주전 약 7세기 말~6세기 초). 성전 문에서 "실로를 보라"는 설교를 했다가 죽을 뻔했다(렘 7장, 26장). |
7-4. 문화
언약궤(법궤)
-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만들어 안팎을 금으로 싼 상자. 길이 약 110cm, 너비와 높이 약 70cm쯤 된다(출 25:10-22).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
- 뚜껑을 '속죄소'라 하고 그 위에 금으로 만든 두 그룹(천사 형상)이 날개를 펴고 있었다. 하나님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른다(삼상 4:4).
- 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을 나타내는 표지이지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도구도 아니다. 설교에서 "미신"이라고 하신 것은 궤를 부적처럼 여긴 태도를 가리킨다.
- 궤는 양쪽 고리에 채를 꿰어 레위인(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옮기도록 정해져 있었다(민 4:15, 7:9).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쓰는 것
고대 이스라엘에서 큰 슬픔과 재앙을 나타내는 몸짓이다(수 7:6, 욥 2:12). 사람들은 그 모습만 보고도 전쟁의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성문과 의자
성문은 성읍에서 사람이 드나드는 길목이자 재판과 공적인 일이 이루어지는 자리였다. 눈이 어두운 엘리는 길 옆 의자에 앉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리품이 된 신의 상징
고대 근동에서 전쟁은 신들의 싸움으로 여겨졌다. 이긴 쪽은 진 쪽의 신상이나 성물을 가져다 자기 신전에 두어 "우리 신이 이겼다"는 표시로 삼았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다곤 곁에 둔 것이 그런 뜻이다(삼상 5:2). 설교에서 "신전에 트로피처럼 전시되는 모욕"이라고 하신 배경이다.
다곤
블레셋 사람들이 섬긴 신. 곡식의 신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삼손이 죽을 때 무너뜨린 것도 가사의 다곤 신전이었다(삿 16:23-30).
사경회(査經會)
며칠 동안 집중해서 성경을 배우는 집회. 한국 교회 초기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주일 성수(主日聖守)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것. 예배를 드리고 그날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로 삼는 신앙 전통이다.
개혁교회
16세기 종교개혁, 특히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 전통. "성경대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을 강조한다. 장로교회가 여기에 속한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이가봇 | 히브리어로 "영광이 없다" 또는 "영광이 어디 있느냐"는 뜻.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삼상 4:21-22). |
| 영광 | 하나님이 함께 계심으로 드러나는 무게와 빛남. 설교는 "궤를 빼앗겨서 영광이 떠난 것이 아니라, 영광이 이미 떠났기 때문에 궤를 빼앗긴 것"이라고 순서를 바로잡는다. |
|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 생활은 있는데 삶을 바꾸는 실제가 없는 상태. |
| 미신(迷信) |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순종 없이, 어떤 물건이나 의식 자체에 힘이 있다고 믿는 것. |
| 헛된 확신 | 근거 없는 안심.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믿는 것. 예레미야 시대의 "여호와의 성전이라"(렘 7:4)도 같은 종류다. |
| 자기 소견대로 |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사사 시대를 요약하는 말. |
| 작정(作定) |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미리 정하심. 설교에서는 궤를 빼앗기신 것이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정하신 일임을 강조하는 말로 쓰였다. |
| 섭리(攝理) |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역사의 모든 일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것. 마무리 기도의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가 이 뜻이다. |
| 예언의 성취 | 하나님이 미리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본문에서는 삼상 2:34와 3:11-14가 4장에서 이루어졌다. |
| 징계(懲戒) | 하나님이 자녀를 바로잡으려고 주시는 사랑의 훈련.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히 12:6). |
| 겸비(謙卑) | 스스로 낮추는 것. 역대하 7:14의 "스스로 낮추고"가 이 말이다. |
| 회개(悔改) | 죄를 뉘우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은 우상을 실제로 제거했다(삼상 7:4). |
| 자복(自服) | 자기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 | 대하 7:14. 하나님의 이름이 붙은 백성, 곧 하나님께 속한 백성. 이 약속은 세상 일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것이다. 설교에서 "교회가 잘되어야 나라가 잘된다"고 하신 근거다. |
| 구약의 교회 | 목사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약 교회"라고 부르신다. 신구약의 하나님 백성을 하나의 교회로 보는 개혁교회의 이해다(행 7:38 "광야 교회"). |
| 값싼 복음 | 죄 사함과 복은 말하되 회개와 순종, 제자로 사는 삶은 요구하지 않는 가르침을 비판하는 말. 독일 신학자 본회퍼가 말한 "값싼 은혜"와 통하는 표현이다. |
| 좁은 문, 좁은 길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
| 제자 |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따르고 배우며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
| 지체(肢體) | 몸의 각 부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인은 그 지체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고전 12:26-27). 예화 속 강사 목사님의 권면이 이 말씀에 서 있다. |
| 교회의 머리 | 그리스도.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골 1:18, 엡 1:22). |
| 성도의 교제 | 교인들이 예배만이 아니라 삶과 짐을 서로 나누는 것(행 2:42, 갈 6:2). |
| 직분자, 중직자 | 직분자는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중직자는 그 가운데 장로, 안수집사, 권사처럼 무거운 책임을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한국 교회의 표현이다. |
| 눈동자같이 |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시 17:8, 신 32:10).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듯 보호하신다는 뜻.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2020년 영상이라 자동 자막의 인식 품질이 낮습니다.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 함께 읽은 역대하 7:12-14는 성경 본문(개역개정)에 맞추어 바로잡았고, 뜻이 흐린 낱말은 문맥에 맞추어 옮겼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 실로의 성막에 대한 경고를 어느 선지자를 통해 하셨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자막이 깨져 있습니다("역시 역사 수"). 내용으로 보아 예레미야 7:12-14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므로 6장에는 "선지자를 통해"라고만 적고 7-1에 구절을 밝혔습니다.
- 강사 목사님의 예화를 들은 자리는 자막에 "때 아쿠 사경에"로 들려 어느 사경회인지 알 수 없어 "한 사경회"라고 적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의 이름은 설교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 한국 교회 대표가 보고한 모임은 자막에 "세계 복음주의 협회"로 들립니다. 정확한 단체명과 모임의 시기는 설교에 나오지 않습니다.
- 설교에서 "1980년 이후 50년이 지난 2020년"이라고 하셨는데, 햇수로는 40년입니다. 뒤에서는 "사오십 년간"이라고도 하셨습니다. 70년대부터 헤아린 어림 표현으로 보이며 6장에는 말씀하신 대로 적었습니다.
- 아벡에서 실로까지의 거리(35킬로미터)는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이며, 재는 길에 따라 달라지는 어림값입니다. 첫 언급은 자막에 "1 30 5키로"로 깨져 있으나 바로 뒤에 "35키로"로 다시 나옵니다.
- 설교 30분 무렵,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일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그냥 허락하신 것,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라고 하신 대목은 자막이 심하게 깨져 있어 3장에 뜻이 통하는 범위만 옮겼습니다. 6-11의 자녀와 학원 대목, "스스로 물러서 있기 때문" 부분도 자막이 흐려 문맥에 맞추어 적었습니다.
- 설교 뒤 약 1분 동안은 음악과 함께 회중이 기도한 시간이어서 자막 내용이 없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 사사 시대의 길이, 미스바와 에벤에셀의 정확한 위치, 실로 파괴 시기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